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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론, 동양화, 팝아트, 동구리의 잠재력

 

헤드 5

 

권기수 작가는 팝아트로부터 호출되면서 어떤 팝아트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얻었으나, 꾸준히 자신의 본성인 동양화를 추구했다. 현대사회에 맞는 것으로 자신만의 동양화 원리를 만들었고 한국화를 현대적, 대중적으로 풀어 접근하는 것이 그의 팝아트다. 그는 이 미묘한 지위를 즐긴다. 그의 화폭 속에서 동구리는 예술의 평면을 가리키고, 동양화의 여백을 암시한다. 동구리의 이런 미학과 별개로 동구리의 도상은 호응을 얻으면서 한편으로 캐릭터의 잠재력을 갖게 되었다. 작가는 이 위치의 묘미를 누린다.

 

# 작품론 - 동양화 작가의 길

 

2015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 파고(파고-무어헤드)의 콘코디아 대학에서 한학기 강의를 한다. 한국화에 모인 학생들에게, 한국의 전각을 가르쳤다. 귀국할 때, 학생들이 돌을 파서 만든 전각들을 찍어서 만든 동구리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 자신이 한국화 아티스트임을 그는 재 확인했다.

 

마치 동구리 연작을 그리는 것 같지만, 그는 사군자 연작을 그리고 있다. 매난국죽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매화는 동구리나 토우처럼 그의 상징적 도상(icon)이 되었다. 동구리는 캐릭터로 착시를 주고, 토우 역시 마스코트처럼 사랑받는다. 매화는 벽의 문양이나 옷의 패턴 디자인처럼 여겨질 수 있을 정도다. 팝스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는 한국화에 따라 매화를 그렸고, 정확히 난을 쳤다.

 

요즘에 그는 대나무에 대한 해석에 집중한다. 오방색을 모티브로 만들어서, ‘색죽이라고 한다. 스튜디오에서는 권기수의 색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한국화다운 예쁜 색을 찾는다. 채도와 명도, 이것이 어우러진 화폭의 색조에 신경을 쓴다.

 

한국화와 동양화는 지중해 중심의 서양의 강한 원색과 달리 채도가 낮다. 그 민족이 지내온 그 땅의 햇빛의 양에 따라 색감이 달라진다. 나는 한국화의 색채 감각을 찾아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의 미감은 살아온 기후환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분명히 현대사회에서 해체되어 가는 우리의 감각도 있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의 접근법은 일관성이 있다. 동양화 대신 팝아트를 한 것이 아니다. 계속 구상을 추상으로 일정하게 전환해 가는 조형예술이다. 그 규칙과 뒤를 잇는 또다른 변칙이 작가의 방법론이다. 동양화 특유의 구상성을 컨템포러리 감각에 맞게 바꾸는 과정에서 팝아트 같은 이미지가 나왔으나, 그것은 추상도를 높인 동양화일 따름. 이런 의미있는 추상들이 동구리가 살아가는 대나무숲 같은 배경이 되면서, 색채감이 좋고 색명도가 높은 화려한 구성의 팝적인 회화로 여겨지는 것 아닐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것이 동양화다. 동양화는 지필묵을 갖고 그리는 것이 아니다. 아크릴로 동양화의 전형인 사군자를 똑같이 조형한다고 현대적인 동양화라고 할 수도 없다. 동양화의 재료인 지필묵으로 하여미키마우스를 시각화하거나 사군자를 치는 으로 하이퍼리얼리즘을 구성해낸다고 현대적인 동양화가 아니다.”

 

그는 우리색으로, 우리말을 하는 작가다. 이 땅의 이야기가 홀대받지 않기를 바라고, K-Pop이 우대받듯 K-Art가 환대받게 만들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팝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미적인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K-Pop이 가장 세계적인 것을 습득해 한국화하는 데 성공해 다시 지구촌에 퍼뜨릴 때는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서 그리 했다. K-Art 역시 세계를 지배한 서양미술의 보편적인 요소가 아닌 개성적이고 특수한 우리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 ‘아트보다 더 노골적으로 본성과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더욱 그리 해야 한다. 그 작업을, 권기수 작가 역시 직면하고 도전한다.

 

작가는 겸재 정선의 화폭을 자기식으로 해석함으로써, 한국화를 그리는 자신을 증거하려고 했다. 겸재의 바위는 레고블럭 같은 흰바탕의 바위 큐브로 변했고, 기암괴석을 이렇게 해석한 것은 마천루가 있는 현대적인 고층 빌딩숲을 암시했다. 수년간 각광받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참신한 문화상품을 비교해보자. ‘만일 조선시대에 스타벅스가 있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겸재의 작품 속에 스타벅스를 그려넣은 머그컵을 만들 수 있다. 대중소비산업의 커머스에 예술을 입히는 것과 달리, 겸재를 자신의 도식으로 해석하고 구상을 추상으로 드러내는 도상학적 창조를 하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남들이 그것을 팝아트라 부르든 아니든 말이다.

 

수년간 권기수 작가는 죽림칠현과 강태공의 배를 그렸다. 동양의 이야기가 작업의 주제와 소재다. 죽림칠현은 초야에 안빈낙도 하는 현자의 이상향 같지만, 그들의 실상은 신선이 아니라 정치의 실패자, 학자들, 아사하는 인재, 다시 못 견디고 환속하거나, 다시 속세의 지배세력으로 복권하는 자들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죽림칠현은 이상향인 동시에 바람불 때마다 현실상을 속삭이며 드러내주는 대나뭇숲이다.

 

작품의 제재만이 아니라, 조형적인 면모에 있어서, 그는 동양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화폭은 분열되지 않고 온화한 듯 하다. 혼란스럽지 않고 질서가 있지만, 통일성이 없다. 그대신 작가 나름의 규칙이 담겨 있다. 논리적이기보다 직관적인 동양의 것이다 . 비통일적인 조화라고 부를 만하다.

 

컬러에서도 자신이 펼치고자 하는 동양화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오방색으로 채도를 낮추어 권기수다운 미색과 탁색을 뽑아내는 데 명도는 대체로 높다. 동양적인데, 팝의 비비드 컬러를 버리지도 않는다. 비통일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것이 권기수의 동양화이고, 한국화의 방법론이다. 조형적 분해도 그러하다. 입체적인 바위를 직육면체로 그리는데, 대나무는 동구리처럼 평면이다. 동구리와 달리 토우와 용은 둥그스럼한 입체성이 있다. 서구적 통일성 대신 동양의 조화를 택한다.

 

# 작법 - 팝아트의 화두

 

권기수 작가의 보물은, 물감을 배합하는 자체적인 시스템이다. 500가지 이상 물감을 구분하여 작품에 맞게 자체적으로 섞어왔다. 스탭에게 지시할 수 있도록 데이터가 쌓여있다. 튜브를 고추장을 낲품하는 제조업체로부터 한 트럭을 주문받고, 튜브압착기를 구입하여, 제작한 권기수 물감 튜브에 직접 담아 쓴다. 하얀 튜브에는 연도가 적혀 있다. 20년간, 물감을 최적 배합한 기록이 수기 장부로 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가장 비싼 것이라고 말한다.

 

스튜디오에 작업을 위해 유니폼을 갈아입는 곳 있다. 스프레이 작업실이 있다. 옷에 물감이 많이 묻는 작업들이 많다. 자동차를 도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단다. 물감을 대체하는 테스트를 하는 방도 있는데, 대나무 숯가루로 작업을 하였다. 좋은 색감을 얻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해야 하는 실험들이다.

 

수제작(manufacturing)을 하지만 공장(factory)을 갖고 팝처럼 찍어낸다. 개념을 갖고 기획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완성된 것들을 뽑아낸다. 그래서, 그를 팝아트라 부를 것인가, 개념예술이라 부를 것인가?

 

이 스튜디오에서 나온 그의 작품들은 장식성과 편화성을 특징으로 했다. 편화기법으로 그려진 동구리라는 귀여운 아이가 연작처럼 등장하였고, 권기수 작가의 마스코트처럼 인식되었다. 그의 화풍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했다. 동구리는 백색의 평면 위에 그려진 단순한 검은 선으로서, 디자인 작품처럼 여겨진다. 장식미 넘치는 화려한 배경 위의 이 심플한 존재는 조화롭다. 잘 그려진 배경 위에 부각된 대중문화의 만화작품처럼도 보여진다. 아니면 일러스트 북 같기도 하다.

 

작가의 화풍은 편화로 그려진 동구리의 온화하고 정제된 이미지와, 장식성 강한 배경의 정교하면서도 발랄한 이미지를 한데 잘 묶어 준다. 그러다보니, 철저하게 평면임을 강조하는 캔버스 위에다가 자신의 기호(sign) 공식과 상징(symbol)의 의미대로, 대나무며 매화며 파초며 모든 도상(icon)들을 빼곡히 장식해 채워넣는다. 이 과도하게 응축된 에너지의 컬러풀한 배경의 인상(image), 백지처럼 하얀 존재 동구리를 만나는 대비되는 역설이 있다. 동구리는 현대미술의 정체인 평면임을 유난히 강조하는 단순한 인간 존재다. 여럿이 있어도 똑같이 생긴 현대인 같은 존재, 무용하지만 무해한 존재, 호감을 주는 존재, 그래서 침묵과 빈 공간으로 하연 여백이 되어주는 순수한 존재. 이 조화다.

 

동구리는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사건적 도상이자, 문제적 캐릭터다. 사실 캐릭터가 아니다. 사람들이 캐릭터 처럼 인식하고, 캐릭터처럼 쓰기를 기대할 뿐이다. 권기수 작가의 작품을 보라. 화폭 속의 동구리는 날라다니고, 경계를 뛰어넘는다. 어디든 나타난다. 정작 작품 그 자체인 그의 화폭은 어떤 경계를 어디까지 넘어가 실험과 도전을 해 봤는가. 권기수 작가가 팝아트로 호명되어 활약했을 때, 동구리라는 도상을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인 화폭 전체가 대중문화와 만나고 기업제품과 만나 해낼 수 있는 모험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충분히 경계를 넘는 예술적 실험을 더 나가지 못 하는 욕구불만도 있었을 법하다.

 

한편으로 그의 작품 그 자체인 화폭은 몇몇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제안을 받아 경계를 넘어서는 팝아트 다운 실험을 했다, 하지만, 그의 화폭에서 동구리만 따로 떼어내어 그러하기를, 그는 주저했을 수 밖에 없다. 그의 작품은 그의 현대미술이 2차원 평면의 모던한 화폭이지, 거기서 튀어나온 동구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들어달라고, 영화감독이 말하듯 말이다.

 

대중문화산업의 엄밀한 논리에서 보자면, 동구리는 (아직) 캐릭터가 아니다. 현대미술의 분명한 논리에서 보자면, 동구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콘이거나 캔버스를 구성하는 한 이미지일 뿐이다. 다만 권기수 작가가 현대인의 얼굴을 모티브로 삼아 탄생시켰고, 지금은 현대사회를 이야기할 때 테마를 밝혀주는 모티브로 활약하는 것이다.

 

권기수 작가는 자신이 팝아트 안에 있는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시절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창작 여정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팝아트 안에 있다면 그것을 넘어설 이유도 분명했었다. 그의 길은 동양화와 한국화의 여정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권기수 작가는 현대미술을 추구했을 뿐, 예술상품을 드러내거나 대중소비를 추구하는 산업에 속하지 않았다. 따라서 동구리가 캐릭터로 탄생할 것인가, 아닌가, 미심쩍고 묘한 자리를 그냥 방치하거나 즐겼을 수 있다.

 

권기수 작가의 동구리 애니메이션 작업은 처절하게 100% 자신의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로우테크로 초당 30프레임을 한땀한땀 만들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미술이다.” 예술로 애니매이션을 모사한 것인지 물었을 때 그는, 애니메이션을 입은예술이라고 밝힌다. 동양화와 한국화를 추구하는 권기수 작가는 팝아트에 대해 미묘한 지위에 있었고, 또 위치의 묘미를 누렸다. 다행이다.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동구리는 캐릭터가 아니고 미술작품의 일부다. 동구리라는 아이콘이 속한 평면 전체가 작품이다. 하지만 때로는 동구리만 떼어내 콜라보를 하기도 한다. 예술에서 해방되어 작품의 화폭을 떠날 수 있다면, 귀여운 동구리는 어디로 갈까. 산업을 만난다면, 이것은 더이상 예술이 아닐까, 아니면 경계를 넘는 예술의 실험일까. 앞으로 동구리는 예술로만 남을까. 아니면 팝아트를 떠나 커머스와 콜라보하는 예술상품으로 갈까, 더 나아가 문화산업이 추구하는 캐릭터의 세계로 갈까?

 

# 동구리 - 평면과 여백의 미학, 캐릭터의 잠재력

 

권기수 작가는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탐구에 매달렸다. 평면회화의 정체성 안에서 탐구를 해나갔다. 동구리는 미술의 본질로서 평면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회화의 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권기수 작가는 동양화의 작법 면에서 모더니스트처럼 형식을 시도했다고 보인다. 죽림칠현과 강태공으로 내용을 이야기했고, 한국화와 동양화의 제재로서 우리의 정신을 드러내려 했지만, 그는 내용이 아닌 조형의 형식을 추구했다. 한편으로 작가는 작품을 던져 놓음으로써 실재(reality) 그 자체를 드러내는(present) 시도 대신, 작품에 담긴 형식과 내용을 통해 의미를 구현(represent)하는 모더니스트의 시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동구리는 지극히 모던한 평면이다. 하지만 이제 튀어 일어나 살아숨쉴 것이다. 아트에서 팝업(pop-up)으로. 대나무 숲을 하면서 점점 동구리가 사라져갈 것이라는 암시를 받는다. 동그리가 튀어나간 빈 평면을 권기수 작가는 여백으로 삼고, 비로소 조화로운 자연을, 동양적인 자유를 다룰지 모른다. 한국화와 동양화에서 추구하려는 이미지와 스토리를 엮으면서 죽림칠현, 강태공, 노자와 장자를 이야기할 것이고, 어쩌면 동양과 한국적 정서를 지닌 보살과 다른 미생과 중생을 만날 수 있겠다고 상상해본다.

 

권기수 작가의 화폭은 화려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하다. 깊이, 넓이, 그리고 높이가 없는, 장소가 아니라 고요한 면이다. 철지히 2차원 평면이 되는 작업 속에서, 도상에 규칙과 의미를 넣어 기호를 만들고, 이야기를 전개하여 의미있는 기호는 무엇인가를 지시하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동구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동구리가 그려진 화폭이 굳이 팝아트라면 그것은 화려한 컬러가 아니라, 현대인이 익숙하게 공감하는 구성, 작가의 구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밀도있는 색의 평면 분할 때문일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동양화의 전면에는 동구리가 있다. 동구리는 평면이다. 동시에 동구리는 여백이기도 하다. 천년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얼굴무늬 기와처럼 신비의 미소를 띄고 있다. 한국인의 미소로, 여백을 보여주는 도상이다. 마음의 여백, 그리고 삶의 여백에 대한 시각조형이다. 동구리는 대나무숲 앞에 튀어나올 수도 있고, 파초와 매화꽃밭 안에 은근히 숨어 미소지을 수도 있고, 화려한 그 자연 뒤에 은밀하게 숨을 수도 있다.

 

동구리는 여백이 된다. 여백으로서 동구리가 완성되어갈 수 있다. 작가는 동구리를 그리지만 동구리를 절제하면서 지워나갈 수 있다. 식물들의 고유한 색상들이 백지를 꽉 채웠으나, 여백은 말이 묵묵히 웃는다. 평면과 더불어 여백으로서, 동구리는 이것은 종이다, 하얀 종이다, 하고 말해준다. 채워넣은 화려한 색의 목소리를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하얗게 비워가려 애쓰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난다.

 

그만의 감각, 그나라 국민만의 오래된 색감으로 동양화를 그려왔다. 동양화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동양화와 동일시되기를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화와 동양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그의 질서가 생긴 것이다. 그가 한국화가, 동양화가인 것은 아무도 모르고, 또 모두가 안다.

 

# 작가론 예술가는 주변에서 중심이 아닌 근본으로 가는 존재

 

한국화의 붓으로 그린, 거친 동구리가 모던하고 미니멀한 동구리로 거듭났을 때, 동양화가 아닌 팝아트로 인식되었다. 그의 숙제는 그때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에 지나, 죽다 살아난 경험을 한 후에도, 먹과 붓으로 동구리를 수없이 드로잉하면서 순간적인 감정을 풀어갔다. 강한 감정의 휘발이 일어난다고, 그것이 치유를 주었다고 그는 말한다. 울고 화내고 무서워하는 많은 거친, 마음 속의 동구리들이 그려진다. 귀여운 동구리의 내면에 있는 그런 감정의 얼굴들이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페인팅은 그림을 잘 드러내는 데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드로잉은 내 감정을 드러내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한국화에서도 그런다. 사군자를 치며 몸과 마음을 자제하는 효과를 준다. 알다시피 드로잉은 독립된 작업이자 본 작업 전에 자신이 작가임을 상기시키는 준비 작업이다.”

 

그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자신은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런 예술작업을 하는지 고민했다. 그는 주변부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고자 노력했다기 보다, 근본에 집중했다. 동양화와 한국화다.

 

그가 소외를 실험과 저항으로 드러낸 변방(fringe)의 행동을 해온 것은 아니다. 딱히 자신이 만난 세상인 팝아트와 자신의 고향인 동양화 사이에서 양쪽 언어를 이해하면서 혼돈을 겪는 주변인(marginal man) 정체를 드러낸 것도 아니다.

 

스튜디오에서 그는 액자 속에 황금 씨발을 썼고, 한편으로는 100호 캔버스에 금박을 입히는 작업을 했다. 발자국을 밟아 찍은 그림은, 단지 미술계의 허상을 발로 밟고 싶어서 만든 것이다. “결국 가수는 대중의 푼돈을 받는 품팔이, 화가는 자본가의 똥꼬를 빠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할 수 없음을 안다.

 

근본을 추구하면서 그는 동양화가로서 자신이 인식되지 않는 욕구불만과 위기의식을 넘어, 어떤 동양화를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로 넘어갔다. 자신이 팝아트가 맞는지를 질문하는 시간을 뒤로 하고, 그렇게 권기수다움을 찾아나갔다.

 

그는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욕망 대신 주변에서 근본으로 움직였다.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근본을 질문했다. 동양화 작가로서 그는, 청년기에 실험을 해온 변방에서, 자신의 기반이 될만한 근거와 원리를 찾고자 했다. 근본이란, 단단한 근거와 지켜야 할 기본이다.

 

관념적으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 그는 자신이 한 개인 예술가로서 어떤 본성을 찾을 것인지 되묻는다. 구체적으로 예술가로서 변신해도 놓을 수 없는 자신의 본성을 찾는 것은, 모든 예술가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예술의 본질을 찾는 것과 다르다. 그는 왜 이 작업을 하는지, 그 근거를 찾아나갔다. 그 답은 동양화와 한국화에 있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예술가인지, 개인의 본성을 찾아왔다. 작업의 근원은 동양화와 한국화가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

 

그는 보편적인 진리를 찾는 철학자가 아니라, 다양한 지혜를 음미하는 수필가처럼 낭독한다. 동양화와 한국화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택했고, 동시에 그리워 한다고. 고향을 찾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장을 하나 만들기 위해 계속 여정에 올라야 한다고. 자신의 본성이 동양화와 한국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증명해가는 것이, 예술가로 주민등록된 권기수의 운명이다.

 

 

 

-안이영노(문화평론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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