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리’의 유람도
KH 에너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권기수의 개인전<Across The Universe>는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그간의 작품 여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람회였다. 수묵에서부터 채색, 설치, 조각, 영상까지 여러 매체를 소화해내는 멀티 플레이어로서 권기수의 역량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권기수의 작업세계는 주로 동심, 유희, 그리고 현대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구성되는데 화면 속 장면은 마치 마치 C.S 루이스(C.S.Lewis)의
<나니아 연대기>(1955~56)에서 아이들이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주한 환상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대나무 숲을 가로지르거나 울창한 파초 아래 포즈를 취하는 등 현실 보다는 상상 속 세계처럼 느껴진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유람’에 대한 작가의 조형적 해석으로 읽힌다. 한국화의 ‘강산유람도’나 ‘산행도’, ‘산수유람도’ 등이 있었던 것을 물려받아 작가는 ‘21세기판 유람도’를 제시한다. 물론 수법과 표현은 많이 다르다. 화면에서 수많은 ‘동구리’들이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지낸다. 배경의 나무 패턴이나 꽃무늬는 강렬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화면에 산재한 파초와 무지개, 물결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행자라면 공감할 만한 이미지를 곳곳에 배치하여 마치 시각적인 즐거움을 한층 증폭한다.
여행은 ‘갈망’이다.
전통유람도가 자연의 ‘소요(逍遙)’나 ‘은일(隱逸)’을 강조하였다면, 권기수 화화는 그런 것보다는 주인공 ‘동구리’에 모인다. ‘동구리’는 생김새부터가 독특하다. 천진난만하고 순진하기 그지없다. 진지한 사색이나 고민 같은 것은 그의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다. ‘동구리’는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마냥 행복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화면 속 ‘동구리’는 집을 떠나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이다. 노를 젓고 있거나 하늘을 날거나 숲속에 도착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것도 있다.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평소 항구 부두 역 기차 배 호텔 방에 강하게 끌렸으며 자기 집보다 여행중 머무는 숙소에 더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열차여! 나를 데려가다오/범선이여! 나를 실어 가다오/멀리! 멀리!” (Moesta et errabunda(1857))라고 외쳤을 정도다.
권기수의 여행은 보들레르처럼 권태와 괴로움을 잊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긍정적이다. 웃는 얼굴과 즐거운 숲, 기대와 설렘, 축제 분위기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일상의 피로에 지친 이들이 본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감상자를 단순한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고 놀고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 구조는 관객을,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자로 인식하는 열린 예술의 구조와 유사하다.
그의 전시를 보면서 기존 팝아트 스타일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다. 작품에 흐르는 생명의 리듬, 인간과 자연의 공존, 순수한 눈망울의 캐릭터는 우리가 염원하는 세계를 형용하였다고 느끼게 한다. 겉으로 드러난 장식과 유희를 잠시 젖혀두고 그가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점을 어렵지 않게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술이 어떤 비전을 실현할 힘이 없지만, 그것이 소망하는 세계의 갈망을 고조시키는 힘을 지닌다고 본다. 그것이 예술의 ‘실제적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예술의 힘을 저버린다면 예술은 단순한 눈요기요, 지적 유희로 전락할 수 있을 것이다. 권기수의 작품은 잃어버린 우리의 ‘동경’을 일깨우고 환기함으로써 그에 대한 ‘갈망’을 고조한다.
/서성록(평론가),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