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노암(문화역서울 예술감독)
나는 동구리에 대해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다. _ 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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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부여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동시에 타자와 의미가 출현한다.
권기수 작가의 동구리는 얼굴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몸과 다리는 왜소하게 축소되어 있다. 팔과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몸과 팔, 다리가 작은 인간이다. 얼굴만 크게 부각되는 인간이다. 인간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다. 눈은 검은 동공으로 뚫려있고 코와 입이 그려져 있는데, 입은 빙그레 웃고 있다. 동구리가 웃고 있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정말 동구리가 웃고 있는 것일까? 이 표정은 변치 않는다. 상황과 배경, 장소와 분위기는 다양하고 다채롭게 변화무쌍하지만 동구리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통 산수화 속 인물은 구체적인 현실 속 인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심산유곡에 의인자중하거나 도원경 속 신선들처럼 이상적인 또는 관념적인 기표들이다. 산수와 일체가 된 인물들은 인간이 자연과 하나 됨을 상징하는 하나의 조형적 장치로 작용한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탈속의 경지를 상징한다. 동구리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불특정한 운동과 형상을 지칭하는 지표일 뿐이다. 일반적인 캐릭터와는 다르다, 동구리는 순환구조를 은유하며 둥근 형태를 닮은 생의 형상, 카르마를 떠올리며 생사(生死)의 순환성을 은유한다.
동구리 이미지는 권기수 작가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무한한 수의 텍스트의 맥락과 이해의 지평을 열어놓는 문지기처럼 이해된다.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검은 구멍이자 나오는 구멍이다. 동구리에게서 사람의 형상을 닮은 것을 제외하면, 검은 이미지, 형상이고 나아가면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해석할 수 있다. 하나의 실재 하나의 의미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 관찰자의 여건이 개입하여 매 순간 다른 해석과 의미가 생성된다.
신예 작가에서 중견작가로 예술세계를 확고히 하고 있는 권기수 작가의 작업에 대한 미술현장의 비평과 담론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건수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예술감독은 밀레니엄 이후 한국화의 현장에서 새로운 유형의 신선하고 도전적인 한국화가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보고, 특히 권기수의 세계관이 전통적인 조선화의 영향 하에 성공적으로 새로운 한국화를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문화평론가 최범은 서구의 팝아트를 리얼리즘 미학의 20세기 버전으로 해석하며 한국, 중국. 일본의 팝아트와의 비교 속에 권기수의 작업을 동서 문화, 현대와 전통의 하이브리드로서의 새로운 유형의 회화로 바라본다. 미술평론가 주하영 전남대 교수는 권기수의 동구리를 당대 한국의 현실과 문화를 잘 반영한 새로운 현대 한국화로 본다. 미술사가 이민수 홍익대 초빙교수도 리얼리즘으로서 팝아트의 해석과 권기수의 동구리 시리즈가 퇴색하는 한국화의 현실에 새로운 현대적 장식성의 미학을 성공적으로 표현한 작업으로 바라본다. 이렇듯 다양한 시각 속에 피상적인 동구리 해석에 머물지 않고 동구리를 벗어난 권기수 작가의 다양한 표현과 형상들로 시각이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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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의미화 단계를 지나간다. 많은 이미지들이 의미에 정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와 의미가 불일치하는 것이 정상이기도 하다. 이미지와 의미가 일치한다는 생각은 이데올로기이자 하나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수많은 이미지들의 변용 속에 의미는 다양한 모습으로 풍부한 뉘앙스와 해석의 여지를 확대해 나간다. 의미는 작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과 독자 사이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생성하는 사건처럼 등장한다. 따라서 과거의 전지적 작가시점이란 하나의 오래된 권위 있는 해석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수의 해석과 의미가 생성된다. 또는 생성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회화이미지라 바로 그러한 의미가 태어나는 메트릭스이며 그 의미의 운명은 예측불가능하다. 동구리는 그렇게 닫힌 의미체계가 아니라 생성되어 가며 확장되는 열린 체계로서 변해버린 현대 회화에서 의미 문제를,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가 완전히 변화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대표적인 동구리 시리즈와 함께 기존에 선보이지 않았던 보다 표현적인 동구리를 만날 수 있다. 활달하고 힘찬 필선과 채색의 파격이 자유로운 드로잉을 통해 동구리 시리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드로잉들은 권기수 작가의 기존 잘 알려진 깔끔하고 정확하게 처리된 선과 면과 칼라와 복잡하지만 섬세한 구성과 달리 피를 흘리듯 먹이 흐르고 번지며 튀어나가듯 폭발한다. 본래 이러한 강렬한 표현적 스타일의 동구리 드로잉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2년 동구리 시리즈가 출현할 때 이미 동시에 제작하던 표현 방식이었다. 20여 년이 지나서 권기수 작가는 본인의 원형적 기원을 회고하듯 또는 반추하듯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 표출하고 있다.
90년 중반 이후 2002년 처음 동구리 시리즈를 제작하기 전까지는 리얼한 사람들의 전시상을 수묵으로 제작하고 그 형상대로 마치 오브제처럼 여백을 모두 따낸 이미지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이후 동구리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번에 갤러리 피앤킴에서 전시하는 표현주의 스타일의 형식으로 제작하였다. 그러다 2002년 7월 삼청동 월전미술관에서 운영했던 백월빌딩 1층과 인사동의 갤러리 피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두 갤러리의 건축적 환경과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깔끔하게 디자인된 동구리 형태로 변형한 이미지로 전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폭발적으로 소개된 까닭에 동구리 이미지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자유로운 표현주의 스타일의 동구리가 먼저 또는 동시에 구상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권기수 작가의 이미지가 지닌 뉘앙스와 작품세계를 보다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배경과 역사를 지닌 동구리가 지금까지 매우 협소하게만 소개되고 해석되었다는 점은 권기수의 작업에 대한 우리의 공감과 이해의 폭을 빈곤하게 했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출구를 개척하고 지평을 연 동구리는 더 많은 비평적 해석의 기회가 열려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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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 우리 미술계에 형성된 한국화의 새로운 사고 또는 이념은 마치 문화정책의 슬로처럼 작동했다. 새로운 산수화와 채색화가 등장하고 동시에 조선화의 전통을 어떤 형태로든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작가들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90년 이후 이러한 현대 한국화의 전개와 성장, 발전은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세계미술계와 우리 미술계가 본격적으로 융합하기 시작하면서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근래 새로운 활력과 움직임이 젊은 한국화가들 사이에서 분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새로운 한국화의 성장을 받쳐주는 단단하면서도 중요한 허리 세대에 권기수 작가를 포함시키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30여 년간 쉬지 않고 국내외에서 분명한 자기 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스펙트럼을 넓혀온 권기수 작가의 세계관에서 동구리는 더 이상 이상적인 도원경에 머물며 유유자적하며 순환하는 운동을 반복하지 않는다. 동구리의 여행과 모험은 보다 현실 속 인간의 신체적 감각과 정서적 감흥을 향해 직격하고 있다. 그렇게 이번 동구리 드로잉은 이미지 하나하나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내세우고 표현하고 있다. 직접적인 발언도 서슴없이 드러낸다. 랩을 하듯. 우리는 동구리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동구리로부터 출발하거나 동구리를 지나쳐 어딘가를 향해 자유롭게 이동한다. 동구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어떤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구리는 캐릭터가 아니라 검은 구멍이고 흔적이고 그림자이고 계단이며 길(道)이다. 완벽한 생명, 이상적 세계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동구리는 정신의 구도자이며 생명 에너지의 형상화이다.
오늘날 현대 회화에서 작가들은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반영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권기수 작가의 동구리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그런 미적 특성을 고양함으로써 한국을 벗어나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의 차이와 구별이 사라진다. 동구리는 일종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권기수 개인전 《너나나나나나너나》
권기수 작가는 사람 모양의 기호인 ‘동구리’로 알려져 있으며,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이번 권기수 개인전<너나나나나나너나>에서는 작가의 자유분방하고 유희적인 드로잉 위주의 작업들을 선보인다. 너나나나나나너나, 나나너나너나나나, 돈, MONEY 등은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 많이 등장하는 문구이다. 언뜻 그라피티 같은 드로잉에 위와 같은 문구와 ‘동구리’가 등장한다. 힙합 음악에서 들을법한 랩 문구와 유령처럼 나타나는 ‘동구리’를 통해 작가는 자본과 뗄 수 없는 예술의 모순과 고된 세상살이에 대한 반항심을 드러낸다. 이외에도 먹으로 그린 (눈물인지 땀인지) 흘러내리는 ‘동구리’와 (동그라미 집합체인) ‘꽃’ 드로잉에서 작가의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기존의 매끈하고 장식적인 ‘동구리’ 회화와 대조되는 이번 드로잉 작업을 통해 작가의 본모습, ‘날 것’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노암(전시기획자, 평론가), 2023